방글라데시의 홍수

요즈음 비오는 횟수가 부쩍 줄어들었다. 마음 한 구석에 어딘가 서운한 마음이 인다. 그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면 좋으면서도 약간은 서운했던 것과 같은 마음인가 보다. 아니면 이 나라의 우기철에 이젠 제법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. 그러니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비와 물은 우리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.

첫 눈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. 눈이 오면 여러 면에서 오히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. 이 나라의 비와 홍수도 꼭 그렇다. 홍수 때문에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큰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우기가 조금 늦어지면 "올해는 왜 이리 비가 늦을까?"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. 당장 농사에 필요한 물 때문이기는 하지만.

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홍수를 무서워하는 만큼 이들은 무서워하지 않는다. 이들이 '번나'라고 부르는 홍수는 홍수라기 보다는 침수라고 하는 것이 더 가깝다. 우리 나라와 같이 급류를 동반한 쏟아지는 물이 아니라, 강의 수위가 바다만큼 높아져서 물이 천천히 역류해서 잠기게 되는 현상이다. 아침에 일어나 보면 발목이 잠길 만큼 물이 차 올랐고, 다음날 아침이 되면 무릎까지 오르고, 그 다음날이 되면 허리까지 잠겨서 나중에는 사람 키를 넘는다. 그리고 그 물이 다 빠지려면 짧아도 2주, 길면 두달이 걸린다.

그래서 홍수가 나도 떠내려가서 생기는 재산 피해는 심하지 않다. 사람들은 침대에 올라가서 기다리다가 물이 더 차면 시렁에 올라가고 더 많이 차면 지붕으로 올라간다. 비록 대나무 집이어도 홍수에 쓸려가지 않는다. 그저 기다리면 된다. 좀 힘들고 불편할 뿐이다. 마치 우리 나라에 겨울이 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. 그래서 이들은 집터를 높이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. 그리고 다음해의 홍수에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다. 낯선 외국인만이 떠들고, 국회의원이 표 얻는 기회로 삼는다.

이들에게는 홍수에 맞는 농사법이 있고 물에 잠기는 지역에 심는 곡식이 따로 있다. '부도 (浮稻;float rice)'라는 벼는 홍수가 나서 물에 잠겨도 죽는 일이 없다. 물이 불면 줄기가 쭉쭉 늘어나서 늘 머리를 물밖에 내 놓는다. 나중에 물이 빠지고 보면 키가 3미터씩이나 된다. 이것이 방글라데시의 홍수다. 외국에 나가 있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물이 보고 싶고 홍수가 그립다, 마치 우리가 산을 그리워하고 눈을 보고 싶어하듯이.